탁씬 전 수상의 부인 폿짜만이 유죄판결을 받은 이유
7월 31일 경제사범을 전문적으로 심판하는 태국의 법정은 탁씬의 부인인 쿤잉 폿짜만이 친나왓 컴퓨터 텔레콤 회사의 4백5십만 주 (7억3천8백만 바트 상당) 를 양도함에 있어 5억4천6백만 바트에 상당한 세금을 포탈했다는 이유로 유죄함을 판결했다. 그녀와 연유되어 함께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반나폿 담마퐁이라는 그의 이복 오빠로 동일히 3년의 징역형을 구형 받았으며, 그녀의 비서인 펜나파 홍헌은 2년형을 구형 받았다. 그들은 각자 5백만 바트의 보석금을 걸고 일단 석방되었다.
법정은 그들이 모두 부유층의 사람들 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포탈할 목적으로 위조한 문서를 정부부서에 제출하는 과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검찰 측의 증거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다고 언명했다. 법정은 엄숙히 폿짜만에게 훈계하기를 그녀가 사회적으로는 국가를 영도하는 수상의 부인이라는 신분이외에도 경제적으로도 초특급의 부유한 삶을 누리면서 사회의 좋은 표본이 되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세금포탈이라는 지탄을 받을 행위를 할 수 있었느냐고 질책했다.
재판소는 세금포탈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증을 제출할 틈이 없도록 완벽한 증거를 근거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폿짜만과 반나폿이 탈세를 목적으로 증권거래소를 거쳐 합법적으로 주식을 양수 양도한 것으로 위장했다고 언명했다. 반나폿은 폿짜만이 오빠인 그에게 주식을 선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정은 그 것이 친척간에 선물로 주고받을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반증했다. 이 판결은 결국 그 3인의 피고가 의도적으로 재산양도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위조된 문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한 것이 위법행위라는 것을 못 박은 것이다.
애초 1997년 11월에 발생한 이 위법행위는 납세관련 형법 제 27조 1, 2항에 따라 2,000 바트 내지 200,000 바트의 벌금형과 3개월 내지 7년징역형의 죄목에 해당하나, 동일한 범법행위를 상습적으로 자행한 경우에는 20년 미만의 징역형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검찰청은 이 사건을 2007년 3월에 고소한 후 30 여명의 전직 자산심의회장, 전 재무부 차관 및 전 국세청장등 관계정부 부서의 전직 고급 공무원들을 위시하여 30여명의 증인들의 진술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반해 3인의 피고 측은 이 혐의를 반박하기 위해 20명에 가까운 증인들을 내 세웠다.
탁씬과 폿짜만을 대상으로 걸린 소송을 정리해 본다.
I. 탁씬을 대상으로 걸린 소송:
1) 미얀마 정부가 탁씬의 자 회사인 친 쎄털라이트의 서비스를 매입하는 것을 주선함에 있어 태국의 수출입 은행의 채 널을 통해 100억 바트의 연성대출을 제공한 건
2) 불법적으로 두 자리 및 세 자리 숫자의 복권 당첨방식을 실시함에 있어 정부로 하여금 3천7백80억 바트 상당의 지면 손실을 가져오게 한 건
3) 가족 사업의 이득을 위해 권력을 남용한 건
반-부정축재 심의회가 본 건에 대해 현재 수사 진행 중에 있음
4) 신 공항 건설을 위한 외주관리 관련 비리에 대한 스켄달
5) 만체스터 씨티 프로축구 팀을 매입한 재원 관련 건
6) 재임 시 자산에 대해 허위 보고 건 본 건은
반-부정축재 심의회와 검찰청이 공동으로 심의 중임
7) CTX 폭발물 탐지기 구매 당시의 비리
이 것으로 인해 정부에 150억 바트의 손해를 입힘
8) 끄룽타이 은행으로 520억에 해당하는 불법 대출을 일으킨 건
II. 탁씬과 폿짜만 양인을 대상으로 걸린 소송:
1) 랏차다피쎅 거리에 위치한 토지구매 관련 비리 건
현재 검찰청은 본 건에 대한 판결을 고려 중
2) SC Asset 주주 구성에 대한 사실을 숨긴 건
탁씬의 퇴장
8월 11일 태국 대법원은 랏차다의 토지 건으로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탁씬과 그의 부인 폿짜만이 나타나지 않자 구속영장을 발급했다. 그들이 외국으로 떠나가기 위한 법정의 허락으로 내세운 조건을 위반했음으로 탁씬이 보석금으로 지불한 8백만 바트와 폿짜만이 공탁한 5백만 바트는 자동적으로 몰수되는 것은 당연하다.
탁씬과 그의 부인 폿짜만은 랏차다의 토지 건으로 열릴 대법원에 11일 9시에 출두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탁씬은 법정의 명령을 무시한 채 NBT 채널을 통해 부정축재 심의를 위한 대법원의 출두를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신변의 위협과 태국의 사법체제가 그에게 불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영국으로 망명을 가노라고 언명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그와 그의 가족이 무한정한 기간동안 영국에 머물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태국의 사법부가 그와 그의 가족에게 불리한 다수기준에 의해 집행되고 있음은 물론, 그와 그의 가족은 끊임없이 암살의 협박을 받아 와 방탄기능을 가진 자동차로 이동해 왔다고 밝혔다.
순진하게 그는 2월 23일에 발표된 총선 결과에 대해 그의 “타이 락 타이” 당의 후신인 People’s Power Party (민중의 힘: PPP)당이 승리를 거둠으로 서 그에 대한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2월 28일 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사법부의 개입과 그와 그의 가족을 제거하려는 모종의 권력으로 인해 점점 그에 대해 불리하도록 진전되어 왔다고 피력했다.
탁씬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끊임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수년 간 해온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림이 너무나 유감스러워 일단 그는 영국에 가서 사태를 주시해 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태국의 정치 현황이 그에게 유리하게 호전될 때까지 그들에게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호적한 시점이 도래하면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또한 한번도 결단코 왕에 대해 불경스러운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노라고 하면서,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는 하지만 절대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만큼이나 나쁜 인간은 아니노라고 하면서, 그의 운세가 호전될 때 태국에 돌아와서 이 곳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같이 그도 모국에 돌아와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했다. 혹자는 그가 구속영장을 회피하기 위해 그가 출처모호한 거금을 지불하고 매입소지하고 있는 만체스터 씨티라는 프로축구클럽의 소재지인 영국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어쩌면 그곳이 아닌 제 삼국으로 잠적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여하튼 그는 8월 25일 현재 영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탁씬의 이력을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면 하기와 같다.
1949년 7월 26일 : 치엥마이에서 출생
1967년 : 삼군 및 경찰 예비학교에 입학
1973년 : 경찰 장교로 임관
1975년 : 미국의 한 대학에서 범죄치안학 석사 수료
1978년 : 또 다른 한 대학에서 범죄치안학 박사 수료
1980년 : 폿짜만과 결혼. 사업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함으로 인해 그 당시 미화 백5십만 달라에 상당한 부채를 짊어짐
1982년 : ICSI 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정부부서에 컴퓨터를 임대해주는 업종으로 IBM제조 컴퓨터의 본체를 취급함. 이 회사는 후에 친나왓 컴퓨터 회사로 개칭됨.
1986년 4월 : Advanced Info Service (AIS) 회사를 설립해 컴퓨터 대여업을 시작함
1987년 : 경찰 중령에서 퇴직하고 친나왓 컴퓨터 및 컴뮤니케이션 그룹회사를 설립함. 태국 증권시장에 등록함
1989년 : IBC와 친나왓 데이터컴 회사를 설립하여 케이블 텔레비전 사업과 데이터 넷트워킹 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함
1990년 10월 : AIS 회사는 아나로그 900 Mhz휴대전화 서비스업을 개시함에 있어 정부로부터 20년간의 사업권을 취득함. 후에 이 회사는 태국 내 GSM 900 휴대폰 사업도 용인 받음.
1994년 : 팔랑탐 당 (짬렁 씨므엉 당수 당시) 을 통해 정계에 입문
1994년 11월 2일 : 외무 장관이 됨
1995년 5월 28일 : 팔랑탐 당의 당수가 됨
1995년 : 반한 씰리빠아차 수상 당시 부수상이 됨
1997년 : 차왈릿 용짜이윳 수상 당시 부수상이 됨
1998년 : 타이락타이 당을 창건함
2001년 1월 : 선거에서 타이락타이 당이 대승을 거둠으로 수상이 됨
2005년 2월 : 재선이 되어 수상의 자리에 다시 오름
2006년 1월 23일 : 친 커퍼레이션 회사의 전 주식을 싱가포르의 테마섹 홀딩 회사에 미화 188억 불에 매각함. 도회지의 국민들은 그가 세금을 포탈함은 물론 국가의 중요한 자산을 싱가포르에 임의로 팔아 버렸다고 불만을 토로함.
2006년 2월 24일 : 국회 해산. 긴급선거가 실시됨
2006년 4월 : 많은 국민들이 선거에 거부권을 행사했음. 다시 탁씬의 타이락타이 당이 대승을 거둠
2006년 5월 8일 : 헌법재판소는 4월 선거의 결과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림
2006년 9월 19일 : 탁씬이 뉴욕의 유엔본부 회의에 참석 중 군부가 군사혁명을 일으킴. 탁씬은 런던으로 가서 망명생활을 시작함
2006년 10월 2일 : 탁씬은 타이락타이 당에서 사임함
2006년 12월 31일 : 태국정부는 탁씬의 외교관 여권을 취소함
2007년 1월 : 국립은행의 재정기구 개발기금 부서는 자산심사 위원회로 하여금 탁씬과 그의 부인이 랏차다피쎅 거리에 위치한 토지를 구매한 건에 대한 조사를 의뢰함
2007년 3월 : 검찰청은 탁씬의 부인과 매형이 1997년도 친 커퍼레이션 회사의 주식을 양수양도함에 있어 5억4천6백만 바트에 상당하는 세금을 포탈했다고 고소함
2007년 5월 30일 : 헌법재판소는 타이락타이 당의 정치활동 금지를 판결하며 그를 포함한 111명의 당 요인들의 5년 간 정치활동 금지를 판결함
2007년 6월 11일 : 자산심사 위원회는 태국에 있는 탁씬과 그의 부인의 은행구좌 중 친 커퍼레이션의 주식배당금이 입금된 모든 구좌를 동결시킴
2007년 6월 21일 : 만체스터 씨티는 탁씬이 프로축구 클럽을 매입하는데 동의함 검찰은 라차다피쎅 거리의 토지 매입 건에 관련하여 탁씬을 기소함. 이 것이 탁씬을 상대로 하는 최초의 기소 건임
2007년 12월 : 탁씬의 명의수취 정당인 PPP 당이 총선에서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함.
2008년 2월 : 17개월의 망명생활을 거두고 귀국함
2008년 7월 31일 : 랏차다피쎅 거리의 토지매입 건에 있어 폿짜만이 3년 징역의 판결을 받음. 보석금을 걸고 석방됨
2008년 8월 10일 : 북경 올림픽 개막식을 관람 후 탁씬과 폿짜만은 함께 영국으로 감.
개각으로 인해 가속되어 선회하는 권력의 소용돌이
관료들의 조직을 불투명하게 조작했고 군부가 행정에 필히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유도했음은 물론, 왕권에의 도전까지 자행한 탁씬은 자신의 종말을 자초하고 말았다고 브루스 게일이라는 기자는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 타임스 지를 통해 기술했다. 7월 말 폿짜만에 대한 유죄판결로 암담했던 앞날이 조금은 밝아지는 듯하자, 급박한 위기를 또 한 고비 간신히 넘긴 싸막 수상은 8월 2일 개각을 발표했다. 금번의 개각은 완전히 정치적인 술책에 지나지 않으므로 별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라고 언급하는 비관론자가 있는가 하면, 무의미한 개각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탁씬에 대한 법정판결의 조짐을 은연중에 시위한 것이라고 보는 예언론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도가 넘친 부정축재 혐의를 근거로 2006년 군부의 세력에 밀려 외유 중에 권력을 박탈 당한 그는 작년 12월 말에 있었던 총선을 통해 그의 잔졸들을 앞세워 싸막을 명의수취 수상이 되도록 조작했으며 제 1 야당인 민주당을 제외한 소수 정당들을 포섭하여 연립내각을 조성했다. 여하튼 금번의 개각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PPP 당내에서 위축되어가는 탁씬의 세력을 반영하는 것 이외에도, 탁씬이 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에 태국 정치판도의 중요한 유형이었던 정치적인 매매계약 관계가 정당간에 이루어 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경제안정을 위한 해결책을 백안시 해버린 것이 완연한 금번의 개각 결과는 국민의 신뢰를 사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상무성 장관으로서 너무나 부족한 역량 때문에 지탄을 받았던 밍콴 쌩쑤완을 산업성 장관으로 임명한 것만으로도 어처구니 없어져 버린 국민들이다. 게다가 그의 후임자로 그의 정계내의 인맥을 제외하고는 자격이 전무하다고 판단을 받은 바 있는 차이야 싸쏨쌉을 그의 후임자로 임명하다니, 양식 있는 국민들은 아연실색해 버렸다.
쑤라퐁 씁웡리 재무장관은 교체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게 되었으며 그 것이 그로 하여금 각료들간에 그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사료되나, 이 현상이 국가를 위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들 하고 있다. 그는 근래 수 주간동안 국립은행이 이자율을 높여 지난 10년 간 최고를 기록한 통화팽창의 영향을 만회해야 한다는 결정에 대해 극구 반대의사를 고수해 오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의견은 의사 출신인 그가 어떻게 국가재무에 관한 업무를 수 십년 동안이나 전문적으로 보아온 국립은행장 보다 국가 재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쑤라퐁이 국가경제 성장이라는 과제에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막무가내로 박차를 가하는 것에 대해 국립은행 측은 경제안정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옴이 그와의 갈등을 가져왔다. 물론 이 두 문제는 간단하게 처리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년도 상반기에 입증된 낮은 취업률과 고도의 생산능력 효용비율을 대비해 보면, 태국의 통화팽창 현상은 간단히 유가상승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 이자율 인상과 통화팽창의 상관관계에 대한 견해 이외에도 쑤라퐁은 환율조정에 관한 정책에 대해서도 국립은행 당국과 상반된 견해를 고집해 오고있다. 이러한 정책의 갈등은 시급히 투자유치가 필요한 태국에 대해 투자가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마누 바스카란 이라는 경제전문가는 분석했다. 그러지 않아도 대부분의 경제분석 전문가들은 금년 하반기의 경제 성장률이 저하될 것으로 예측함에 있어, 그 원인은 국내 구매력의 저조현상, 고가의 국제 유류시세 및 장기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로 인한 정치적인 불안정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금번 개각의 결과가 수반해 올 중요한 일들은 상기에 아직 언급되지 않았다. 태국인 언론인들에 의하면 금번의 개각은 PPP당내의 4인의 권력자들에 의해 안배된 것이라고 한다. 명의 당수인 싸막 수상, 당 서리인 쑤라퐁, 수상실 서리인 티라폰, 그리고 해산된 타이락타이 당의 최고 권력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네윈이라고 한다. 금번의 개각에 대해 탁씬은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금번 개각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내포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의 의미는 PPP 당의 요인들이 탁씬의 잔재해 있는 권력에 대한 느낌에 변화가 왔다는 것을 감지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것은 작년 말에 있었던 선거 당시 변방의 빈곤한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난 탓씬의 영향력이 이제는 별로 그들에게는 이롭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탁씬이라는 인물과 그의 막강해 보이던 재력이 사법부의 판결 앞에서는 별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목격했음은 물론, 그가 이제는 PPP당을 통합하는데 별로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차기 선거에 더 이상 당의 자금을 댈 힘도 용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의미는 탁씬이 수상이 되기 이전에 만행하던 태국 정치판도의 중요한 유형이었던 정계의 각축전이 지배계층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권력의 매매계약 관계가 정당간에 다시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탁씬이 수상자리에 앉아 있던 기간동안 수상실의 권력과 위신은 지대해졌다. 그는 어쩌면 태국 민주주의 역사상 국회에 대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위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그는 태국의 근대 정치사의 풍토를 바꾼 장본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태국권력의 세 가지 핵심인 관료들의 조직을 불투명하게 조작함은 물론, 군부가 행정에 필히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유도했고, 게다가 왕권에의 도전까지 자행한 탁씬은 자신의 종말을 자초하고 말았다는데, 그 것은 결국 그의 적수들이 그들 외면하기로 암암리에 합의를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8월 초에 발표된 개각의 재 조성 과정을 유추해 봄에 있어 정치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은 정권 안배의 조짐이 현저하게 노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탁씬이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의 유형이 다시 재현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태국은 이제부터 다시 미약한 수상이 행정부를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싸막은 금번의 개각을 그의 행정부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홍보효과에 과녁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도도 그로 하여금 태국 수상의 전통적인 임무, 즉 내각을 영도해 가는 입장이 아니라 내각 내부의 여러 세력을 중재하는 임무를 수행해 가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투쟁은 끝난 것인가 ?대다수의 국민들은 탁씬 전 수상과 그의 가족이 국외로 망명함이 모든 정치적인 불화와 정권교체가 종료된 것으로 믿고 싶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러한 정치적인 이해상관의 투쟁을 지켜보는데 지쳐 있어 아마도 18세기 하반에 장군출신으로 러시아의 캐터린 대제의 총신을 지낸 포템킨이 내세웠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나 상태를 감추기 위한 번지르르한 겉치레의 포템킨 이라는 마을로 은둔하고 싶으리라. 이 것은 국민의 비통이 그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온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평하지도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금번의 도주가 태국의 정치적인 불안정에 종말이 왔다고 믿어 버리는 것도 현실성이 결여된 판단이다.
탁씬의 현실도피는 태국을 회사에 비유한다면 그가 더 이상 사장이 아니므로 그의 영리추구가 더 이상 국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는 하겠지만, 그가 뿌려놓은 씨앗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잠재되어 있는 위험한 현상들이 언제 싹트게 될지 몰라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가상할만한 일이다. 미국의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 당시를 돌이켜 보면서 특히 그 중에서 켓티스버그 전장터의 장면을 추정해 본다. 만약 로버트 리 장군이 북부군대의 병력과 그들의 위치에 대해 옳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전진 대신에 후퇴를 명령했을 지도 모른다. 그의 명령은 승리를 위한 완전한 투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남북전쟁의 남과 북의 승패를 가늠했다. 그는 전쟁과 함께 패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탁씬이 현 시점에서 바로 후퇴하기를 결정한 것에 대해 누구라도 놀란 척 할 필요는 없다. 그는 17개월의 망명을 접고 2월 달에 돌아왔다. 그의 귀환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군중들, 게다가 개중에는 감격의 눈물까지 뿌려대던 무리들, 그러나 법의 판결은 만인에게 냉정했다. 그의 부인을 위시한 친척들이 받은 판결은 단호했다. 그에게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도 그의 귀국은 그에게 여하 한 영광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정국에서 들어설 틈이 없게 되었다. 싸막 수상은 그에게 한치의 여지도 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했다. 그보다도 더욱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가 참석한 법정에서 낭독된 그의 부인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그가 당면해야 할 여러 소송에 관련된 판결을 예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부인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판결은 그의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
그는 수 년 전에 출판된 그의 자서전적인 “눈은 별을 보는데, 거북이는 땅을 기네”라는 책에서 그가 사업에 참패하여 부채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녀가 어떻게 그의 재기를 위해 노력했던 가에 대해 고백했다. 당돌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고 한다. 바로 그녀였단다. 그가 어디로 피신해 버리고 싶었고 빚쟁이들이 다들 없어져 버리기를 기원하고 있을 때, 그녀는 빚쟁이들이 빗발치듯 걸어대는 전화를 몽땅 다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친정이 소유하고 있던 땅 문서들을 모두 거두어 남편의 빚을 청산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빚쟁이들이 걸어온 전화를 받아야 했던 구형의 검은 전화기를 아직도 하나의 기념품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단다. 그 당시 그는 최하의 역경에 처해 있었고 거기에서 박차고 상승하여 재기와 재산을 이루어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와 그녀 간에는 극심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오면서 발생한 아주 돈독한 상호교감이 있으며, 그는 그녀의 반려자로서 그녀의 뚝심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이러한 부부간의 감정에 대해 타인들은 알 길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도주는 그에 대한 단 하나의 형사소송 이외에 모든 다른 형사소송 건이 유예될 것을 자초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의 참석 없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미 진행되어 버린 랏차다피쎅 지역의 토지수취 관련 건 이외의 모든 소송은 일단 보류될 수 밖에 없다. 그는 상기의 건에 대해 피고로서의 권한을 포기한다고 선서한바 있다. 민사소송은 피고의 참석 없이 진행될 수 있으므로 소송으로 인해 묶여 있는 그의 모든 자산과 그가 담보한 자산들이 결과적으로 몰수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이 바로 정당성과 저촉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우리들의 자산이 우리들의 생각에는 정당하다고 생각되는데 과열된 투쟁 때문에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들은 우리들의 생각에 따라 언어도단적인 부당함에 대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피신을 할 것인가?
해리 포터의 연작 소설로 유명해진 영국의 여류작가 제이 케이 로울링은 감정이입이란 인간이 소유한 유일한 생산적인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그들이 경험한 것들을 통째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공정하고 수용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극단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곤경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러 사람들에게는 영웅으로 보이는 반면, 다른 이들에게는 반역자로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이제부터 태국의 정치 현황의 긴장도가 완화될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태국의 정치판도가 온화해 질 때 탁씬이 법의 판결을 받으려 귀국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정치가들이 나라를 위해 화합할 때 태국의 정치 현황은 호전될 것이다. 그것이 언제 이루어 질지가 의문이다. 그리고 탁씬이 이러한 상황을 위해 얼마나 협조할 용의가 있는 것 인가도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정치적인 타협이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전재조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행정부가 안정되어 나라의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각료는 진정한 국민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야 함에 있어 “민민연합”을 위시한 분열된 여러 정치단체의 대표자들을 포함되어야 한다. 각료는 그들이 행정의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며, 개헌이라는 표제가 그들의 정치적인 이권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히 해야 할 과제라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킨 다음에야 비로서 야기할 수 있는 지대한 과제인 것이다.
과거에 수차 있었던 정계와 군부의 갈등은 여러 형태의 화합의 수단으로 완화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생명과 재산의 희생으로 성취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면이라는 방편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권이 걸린 조직들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룰 용의가 있어야 한다. 불과 불이 맞붙으면 집을 태워버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희망의 창구는 아주 작으만 하다. 탁씬은 그의 투쟁을 연기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후퇴를 함으로서 그는 태국의 정계가 화합하는 날이 도래하여 그의 귀환의 기회가 조성될 것을 기대하면서 전쟁터에서 빠져버린 것 같다. 그러나 문간을 지키는 자들이 무지막지 하다면 그가 그들에게 먹일 독약을 제조해 온들 누가 그를 문책할 수 있을 것인가.
이상으로 12호의 이야기를 마친다.
筆者: 김 미라 [본명: 김 희경(金 嬉卿)] 2008년 8월 25일